생활과 묵상-1월 16일(월요일)
오늘의 말씀 : 마르 2:18-22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단식을 하고 있 던 어느 날,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파사람의 제자들은 단식을 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왜 단식을 하 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잔칫집에 온 신랑 친구들이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야 어떻게 단식을 할 수 있겠느냐? 신랑이 함께 였는 동안에는 그럴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신랑을 빼앗길 날 이 온다. 그 때에 가서는 그들도 단식을 하게 될 것이다.”
“낡은 옷에 새 천조각을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낡은 옷이 새 천조각에 켕겨 더 찢어지게 된다. 또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다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오늘의 말씀
신랑이 함께 있는동안에는
오늘의 묵상 : 라스트 찬스
나라를 빼앗겨 본 사람, 실제로 그 부자유함 속에서 억울하게 지내본 사람은 본래 자신의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압니다. 자신의 언어가 있어도, 자신의 이름이 있어도 그것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었던 우리의 선조들 가운데는 그 부당함을 되돌리려 목숨을 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언어와 이름과 나라를 되찾기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분들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 그들도 신랑을 빼앗길 날 이 올 것이다”라는 구절이 걸어옵니다. 빼앗겼다면 빼앗은 자가 있을 것입니다. 누가 그들에게서 신랑을, 달리 표현하자면 누가 나에게서 주인을, 또는 자유를 빼앗아 간 것일까요? 한 걸음 더들어 가자면 저는 주인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는 한 것인지 되돌아봅니다. 제게서 주인을 빼앗아 간 주체를 알지도 못한 채, 빼앗겼어도 빼앗기었는지도 모르는 재로 사람에, 시간에, 감정에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는 제 모습이 얼마나 한심하고 안타까운 모습이 보입니다. 주님, 저는 본래 주님의 자녀이고 그 자유함을 누려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머리로는 압니다. 그런데 바보처럼 시간과 돈, 과거의 상처와 미래의 걱정으로 부자유한 존재로 살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도대체 저에게서 주인을 빼앗아 간 것은 무엇입니까? 라고 하소연을 올립니다. 이내 저의 오래된 습관, 말투, 선입견과 고정관념들이 하나하나 떠올려집니다. 결국 계가 하는 말과 행동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타인의 서운한 말 한마디가 제 영을 부자유하게 하고 제 삶을 옭아매어 신랑 잃은 제자로 만듭니다. 제 안에서 성령께서 일하시며 함께 하시는 것을 알아차리면 저는 단식을 하지 않아도 매일 잔첫날인데 말입니다. 오늘 지금 바로 이 순간이 신랑과 함께 잔치를 누릴 수 있는 라스트 찬스임을 기억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지금이 바로 신랑과 함께 있는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