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묵상-12월 26일(월요일)

오늘의 말씀 : 요한 1:1-14

나는 예언자들과 현인들과 학자들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그러나 너희는 그들을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십자가에 매달고 또 더러는 회당에서 채찍질하며 이 동네 저 동네로 잡으러 다닐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무죄한 아벨의 피로부터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살해된 바라키야의 아들 즈가리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땅에서 흘린 모든 무죄한 피 값이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
분명히 말해 둔다. 이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이 이 세대에 내리고야 말 것이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너는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에게 보낸 이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를 모으려 했던가. 그러나 너는 응하지 않았다. 너희 성전은 하느님께 버림을 받아 황폐해지리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 하고 너희 입으로 찬양할 때까지 너희는 정녕 나를 다시 보지 못하리라.”

오늘의 말씀
땅에서 흘린 모든 무죄한 피값이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

오늘의 묵상 : 모든 무죄한 피 흘리는 이들에 대한 외면

“악마는 디테일을 좋아한다.”(detail디테일, 전체에 대하여 세부적인 부분을 이르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본래의 뜻과 어떤 상황에서 적절하게 사용되는지 확실하게는 모릅니다. 다만 저는 어떤 주장이나 의견에 ‘원칙적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찬성하면서도 실제로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내용을 결정할 때는 ‘현실이 그렇지 않다’라는 둥 ‘전례가 없다’라는 둥 ‘좀 더 신중하게 결정하자’라는 등의 이유를 대면서 ‘처음 제안된 좋은 의견’(다 같이 원칙적으로는 동의 한다)을 무력하게 만들고 결국 폐기하는 모습에서 “악마는 디테일을 좋아한다”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오늘은 그리스도교 최초의 순교자인 성 스테파노 성인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성서 말씀도 배척당하고 순교 당한 예언자들을 기리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무죄한 사람들이 당한 억울함이 절대로 잊히거나 묻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그런 억울한 죽음의 대표자이십니다. 죄 없으신 분이 죄인으로 판결받고 사형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고백하며 예배드리는 크리스천들과 교회는 세상의 무죄한 이들이 억울함을 당하고 울부짖는 부르짖음에 함께 하면서 같이 소리쳐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저는 사제로서 무죄한 사람들의 억울함을 모르고 지냈거나 외면한 날들이 너무 많습니다. 구약성서의 말씀이나 예수님의 말씀에선 언제나 하느님의 공의와 하느님의 마음과 하느님의 평화가 특별히 강조되었지만 저는 현실적인 이런저런 핑계로 행동을 주저하고 실천을 다음으로 미뤘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억울한 사람들의 고난과 신음은 더욱 깊어지고 목숨을 잃어갔습니다. 저의 핑계는 늘 현실적인 작은 구체적인 일들이었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도 억울하게 고난 당하는 사람들과 무죄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