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묵상-12월 09일(금요일)
오디오 말씀
오늘의 말씀 : 마태 11:16-19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길 수 있으랴? 마치 장터에서 아이들이 편 갈라 앉아 서로 소리지르며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았다.’ 하며 노는 것과 같구나. 요한이 나타나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니까 ‘저 사람은 미쳤다.’ 하더니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까 ‘보아라, 저 사람은 즐겨 먹고 마시며 세리와 죄인하고만 어울리는구나.’ 하고 말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지혜가 옳다는 것은 이미 나타난 결과로 알 수 있다.”
오늘의 말씀
“하느님의 지혜가 옳다는 것은 이미 나타난 결과로 알 수 있다”
오늘의 묵상 : 구존동이
예수님 시대 사람들은 변덕스런 사람들 같습니다. 그들은 세례자 요한이 매우 엄격하니까 그를 미쳤다고 하고, 예수께서 너무 느긋하게 보이니까 제멋대로 산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활동으로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는지는 제대로 보지 못하였습니다. 오늘날 교회나 일반 사회집단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구존동이(求存同異)란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서로의 의견이 상충하는 다른 부분은 인정하면서도 뜻이 맞는 부분이나 이익이 있으면 우선으로 추구한다’는 말입니다. 제가 보기엔 이 말은 하나의 커다란 전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저변에 깔린 공통점이 무엇인가라는 점입니다. 그 공통점은 서로 인정할 때 ‘공존(共存)’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은 그 공통점을 서로 공유했기에 서로 다른 행동을 했더라도 통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비난한 사람들은 그 공통점을 보는 지혜가 부족했기에 현상 너머에 있는 하느님의 지혜를 깨닫지 못했나 싶습니다.
외면을 보고 판단하고 비난하고 등 돌리기에 앞서서, 내적동기를 이해하려는 열린 자세 그리고 방법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함께 선을 이루려는 관대한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오늘의 기도
상대방의 외양과 행동을 보기 보다는 그가 지향하려는 마음을 볼 수 있는 지혜를 갖도록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