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묵상-6월 19일(연중 12주)
오늘의 말씀 : 루가 8:33-39
마귀들은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떼는 비탈을 내리달려 모두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돼지 치던 사람들이 이 일을 보고 읍내와 촌락으로 도망쳐 가서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고 보러 나왔다가 예수께서 계신 곳에 이르러 마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멀쩡한 정신으로 예수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이 일을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사람이 낫게 된 경위를 알려주었다.
게르게사 근방에서 나온 사람들은 모두 몹시 겁을 집어먹고 예수께 떠나가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배를 타고 떠나가셨다.
그 때에 마귀 들렸던 사람이 예수를 따라다니게 해달라고 애원하였지만 예수께서는 그를 돌려보내시며 “집으로 돌아가서 하느님께서 너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일을 이야기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는 물러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해주신 일을 온 동네에 널리 알렸다.
오늘의 말씀
그 때에 마귀 들렸던 사람이 예수를 따라다니게 해달라고 애원하였지만 예수께서는 그를 돌려보내시며 “집으로 돌아가서 하느님께서 너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일을 이야기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는 물러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해주신 일을 온 동네에 널리 알렸다.
오늘의 묵상 : 마귀와 고통
저는 ‘마귀 들렸다.’는 말이 매우 거북스럽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정신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 붙였던 말이어서 그렇습니다. 정신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이해도 설명도 불가한 일이었기에 쉽게 ‘마귀 들렸다.’고 말해왔습니다. 뇌도 신체이기에 병이 들어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저 역시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병이라는 것이 원인이 밝혀진 것도 많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것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병증의 원인에 대하여 마귀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고통은 악하고 나쁜 것이라는 단편적 이해에서 비롯될 것입니다.
하지만 고통은 은혜의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통의 원인에 대하여 우리는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바른 태도일 것입니다. 오히려 고통의 원인에 대하여 생각하기보다 고통 중에도 소망을 지켜내는 것, 그리고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잘 보살피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삶을 무너뜨리는 고통은 셀 수 없는 다방면의 형태로 찾아오기에 마귀의 이름이 ‘군대(레기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쪼록 그리스도 예수께 소망을 두고 ‘군대’가 몰아오는 고통에서 해방되는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에게도 베풀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의 기도
치유의 하느님, 우리를 괴롭히며 무너뜨리는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푸신 은혜를 온 세상에 알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