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묵상-6월 1일(수요일)

오늘의 말씀 : 요한 17:11-19

나는 이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돌아가지만 이 사람들은 세상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나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지켜주십시오. 그리고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주십시오.
내가 이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나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내가 이 사람들을 지켰습니다. 그 동안에 오직 멸망할 운명에 놓인 자를 제외하고는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를 잃은 것은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나는 아버지께로 갑니다. 아직 세상에 있으면서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 사람들이 내 기쁨을 마음껏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 주었는데 세상은 이 사람들을 미워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은 것처럼 이 사람들도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원하는 것은 그들을 이 세상에서 데려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마에게서 지켜주시는 일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 사람들도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진리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이 사람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하여 이 몸을 아버지께 바치는 것은 이 사람들도 참으로 아버지께 자기 몸을 바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내가 아버지께 원하는 것은 그들을 악마에게서 지켜주시는 일입니다.

오늘의 묵상 : 그들을 악마에게서

악마로부터 제자들을 지켜달라는 간절한 주님의 기도는 역설적으로 제자들조차도 악마로부터 조종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길을 막아선 베드로를 향해 주님은 “악마야, 물러가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악마를 제어할 힘을 받은 그리스도인들도 언제든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악마의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지요.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도 악마의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왕따를 당하여 고통받는 학생의 법정 투쟁을 그린 드라마를 본 기억이 납니다. 직접 가해를 한 학생, 침묵으로 동조한 급우들, 그리고 이를 알고도 묵인한 교사가 나옵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힘과 권력을 가지고 학급 전체를 조종하는 어느 특정인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분위기’였다고 짚어 냅니다. 그 해석에 저는 적잖이 공감이 갔습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선하고 정의롭고 긍정적인 기운이 나로부터 내 주위에 번져나가고 우리를 악마에게서 지키는 보호막이 되어 주기를 바래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하늘로부터 내리는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하루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