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묵상-6월 24일(금요일)
오늘의 말씀 : 루가 1:57-66, 80
엘리사벳은 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웃과 친척들은 주께서 엘리사벳에게 놀라운 자비를 베푸셨다는 소식을 듣고 엘리사벳과 함께 기뻐하였다.
아기가 태어난 지 여드레가 되던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왔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가리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가 나서서 “안됩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해야 합니다.” 하였다.
사람들은 “당신 집안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하며 아기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즈가리야는 작은 서판을 달라 하여 “아기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바로 그 순간에 즈가리야는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하게 되어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모든 이웃 사람들은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이 일은 유다 산골에 두루 퍼져 이야깃거리가 되었고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이 아기가 장차 어떤 사람이 될까?” 하고 말하였다. 주님의 손길이 그 아기를 보살피고 계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기는 날로 몸과 마음이 굳세게 자라났으며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오늘의 말씀
아기 이름은 요한
오늘의 묵상 : 인생무상
요한의 생애를 묵상하다 올 들어 세상을 떠난 유명 인사들 소식에 안타까워했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한편, 러시아의 침략으로 희생된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고통과 썰물처럼 빠져나간 코로나 팬데믹 뒤에 뜻하지 않게 죽음을 맞이한 전 세계 수백만명의 슬픔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음을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죽음을 목격하며 어차피 한번 왔다 가는 인생인데, 이름을 남기고 안 남기고가 무슨 대수겠는가? 라는 허망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 와중에 별것도 아닌 잡다한 것들로 갈등하고 걱정하며 마음 졸이는 내 일상이 한심하여 이대로 인생 끝나는가 싶어집니다. 이 깊은 허무 속에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죽음에 대한 관념이 자리하고 있는 듯도 합니다.
그런 내게 주님은 애써 좋은 기억을 떠올리십니다. 며칠 전 지방에서 홀로 생활하는 큰아들 요한에게 가서, 정성을 다해 돌봐주느라 녹초가 되어 돌아온 일입니다. “그 일을 후회하는가?”라고 물으시는 주님께 “그럴 리가요?”라며 펄쩍 뛰자 “그렇게 아름답고 착하고 진실하게 살아라. 그러다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나면 되는 거다.”라고 단순하게 정리해십니다. 난 선문답 같은 주님과의 대화를 통해 다시금 가벼워져서 지금 여기로 돌아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제 아들 요한이 당신의 보살핌과 이끄심에 힘입어, 주의 뜻을 이루며 살게 하소서.